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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BEST OF BEST

이제는 소중한 만남으로

나는 2년 전 초겨울 사랑하는 동생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냈다. 그 아픔과 허망함은 말로는 다할 수 없었다. 부모님을 일찍 여윈 우리 형제는 한 몸처럼 의지하며 서로에게 기쁨이요, 등불로 살았다. 그랬기에 그 충격은 내 살점을 도려내는 것보다 더 아프게 나를 괴롭혔다. 갑자기 떠났기에 애틋한 말도 못 나눈 것이 더욱더 나를 슬프고 외롭게 만들었다. 목 놓아 불러보기도 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동생은 꿈속에서나 나를 위로할 뿐 끝내 내 앞에는 나타나 주지 않았다. 이런 생각에 빠져 지내다 문득 깨달음을 얻었다. 동생 몫까지 잘 살자. 그것이 가슴으로나마 동생과 함께 사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두 배로 살자는 마음이 드니, 뭔가 조금 바쁘게 지내야 했다. 이런 생각으로 ‘화성시남부노인복지관’에 나오게 되었다. 프로그램을 접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을 때, 유난히 어느 한 분이 내 눈에 들어 왔다. 자연 그대로의 하얀 머리카락과 더불어 드러나는 그분의 모습은 반듯하고 당당했으며 카리스마가 넘쳤다. 나이는 드셨지만, 자신을 참 잘 관리하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평소에 조금 둥글지 못한 성격 때문에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걸거나 다가가지 못한다. 그래서 가끔 쌀쌀맞다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런데도 그날은 왠지 먼저 그분께 다가가 말을 건넸다. “여기 처음 오신 거예요.” 그러자 그분이 그렇다고 반갑게 대답하며, 좋은 프로그램이 있으면 소개해 달라고 했다. “저도 잘 모르지만, 인문학, 라인댄스를 중심으로 몇 개 골라 보려고요.” 이렇게 그분과 인연이 되어 인문학, 라인댄스, 탁구까지 함께 하게 되었다. 나이로는 나보다 언니이지만, 친구처럼 의지하며 매우 친하게 지내고 있다. 그분은 인문학 강의에서 누구보다도 많은 감동을 하곤 한다. 교수님의 지론에 따르면 우리의 인생은 ‘영원한 현재’다. 다소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어차피 ‘영원’이라는 관점에서 보자면, 아무런 차이도 없는 것이 아닌가? 시니어는 인생의 저녁노을이 아니다. 진정으로 화사한 꽃을 피우기 위해 정오에 서 있는 사람들이다. 이것이 인문학 강의를 하시는 교수님의 주장이다. 이렇다 보니, 나 역시 감동의 물결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시간은 나에게 생명의 시간이다. 온 누리에 쏟아지는 햇빛이 내려주는 찬란한 생명력처럼 인문학 강의는 나에게 온갖 치유와 회복을 공급한다. 가슴이 벅차올라 피부까지도 생기로 가득해진다. 때로는 작열하는 태양 아래로 산들거리며 불어오는 바람처럼 말할 수 없는 위로가 되어 준다. 그분도 이런 나와 같을 것이다. 그래서 저렇게 행복해하는구나. 그분이 쓴 글을 발표하는 시간이 되었다. 어떤 내용일까? 궁금하긴 했지만, 내가 생각했던 것은 완전히 빗나가고 말았다. 나는 너무도 놀랍고 슬퍼서 그분이 글을 읽어 가는 내내 울며 절며 마음으로 동행했다. 우리 시절에는 누구나 어려웠다고는 하지만, 그분의 삶은 절박함을 넘어 처절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저런 강하고 반듯함이 만들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만큼 그분의 내면에는 외로움이 가득했을 것이다. 내 작은 마음이나마 그 자리에 포근하고 고요히 스며들어 온기를 나누고 싶다. 하지만 이것은 순전히 나의 생각일 뿐이다. 그분의 모습에서는 어떤 흐트러짐도 흔들림도 없다. 들판에 홀로 핀 백합처럼 다정한 미소와 함께 묵묵히 그윽한 향기를 발하며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고 서 있다. 나는 이런 그분을 보고 배우며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어쩌다 그분이 안 보이는 날이면 전화를 건다. 내 전화에 행복해 하시는 것이 목소리에서도 묻어난다. 그러면 내 마음도 그 행복에 전염된다. 사정이 생겨서 못 갔다는 다정스러운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면 아쉬웠던 마음이 봄눈 녹듯 금세 사라져 버린다. 요즘 나는 그분을 통해 제한 없이 행복을 공급받고 있다. 그분은 말로만이 아니라, 미소로, 표정으로 호흡처럼 끊임없이 행복을 발산한다. 행복은 향수 같다. 내게 뿌려야 주변으로 퍼져나간다.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내가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 시인의 의 앞부분이다. 교수님은 늘 이렇게 외친다. 내가 변하면, 다 변한다. 내가 행복하면 다 행복해질 수 있다. 우리 인문학반 사람들은 교수님의 외침대로 모두가 ‘영원한 현재’를 산다. 그렇기에 절대로 절망의 그림자는 접근할 수 없다. 나이는 숫자로 기록된 지혜와 경험의 척도일 뿐이다. 나이로 세상에서의 남은 날을 이야기하는 것은 유한적인 시야에서 자신을 억압하는 치명적 오류다. 인문학반 모두는 유한적 압박에서 자유로운 영혼이며 찬란한 정오를 발하는 사람들이다. 동생을 보낸 아픔을 딛고, 동생의 몫까지 환하게 꽃피운 나의 소중한 만남을 하늘나라에서 동생도 기뻐할 것이다. 인문학이라는 행복 열차에 몸을 실은 우리는 이제 드넓은 희망의 들판을 향해 달리며 길고 경쾌한 설렘의 기적을 울려본다. “아! 내 인생에 소중한 만남으로 위로를 베푸신 나의 하나님 감사합니다.” 강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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